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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1월 셋째주와 넷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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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7회 작성일 25-06-10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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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셋째주에는 N 만나기. 얼굴 한번 보자고 얘기는 했었는데 여름동안은 나도 계속 아프고 정신없어서 이제서야 만남이 성사되었네. 여름에 두문불출했던 것이 미안하여 정자동까지 가려고 했는데 N이 또 여기까지 와 주겠다고 배려해줘서 지난주에 이어 다시 한번 서촌에 발걸음을 하게 됐다. 그리고 이날 어찌저찌 하다가 가게 된 갈리나 데이지. 내 기억에는 아마 칸다소바에는 줄이 길었고 티엔미미는 공사중이고 어쩌고 해서 근처 맛집 중 하나였던 여기로 향하게 됐던 것 같다. 근데 여기 생각보다 가격대가 상당한 가게였더라. 파스타 한 접시에 2~3만원대여서 이 가게가 처음이었던 나도 당황하고, N도 당황하고. 뭐 먹자고 들면 못 먹을 것도 없고, 어차피 들어왔으니 그냥 먹자! 하고 먹었지만 어쨌거나 점심식사에 쓸 거라 예상했던 가격의 범위를 훨씬 상회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양도 생각보다 너무 찔끔이라 아무 생각 없이 이 맛집을 추천한 나로서는 속으로 N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나마 맛이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다. 뇨끼가... 참 맛이 있더라고. 근 몇 년 간 먹었던 뇨끼 중 가장 맛있다는 생각을 하며 잔잔히 충격을 받았다. 왜냐면 나, 2019년에 이태리에 다녀왔었으니까. 이태리에서 제대로 된 뇨끼를 시도해 볼 생각을 못 했던 탓이 크긴 하지만. 그 와중에 뇨끼를 담아 내온 접시가 우리집에 있는 것과 똑같아서 그게 또 소소하게 반가웠던 기억.

이날 우리는 총 두번의 카페와 세번의 식사를 했다. (점심이 그렇게 부실했으니 무리도 아니지.) 그리고 다섯 번의 미식 중 내가 생각하기에는 유일하게 성공적이었던 카페 레종 데트르. 디저트가 맛있다는 소문을 듣고 간 것이었는데 정말로 이날 고른 디저트 두가지가 전부 다 너무 맛있었다. 예쁘면서 맛도 있고 섬세한 디저트를 파는 카페는 생각만큼 많지 않기 때문에 이런 장소 하나가 소중하다. 좌석이 불편하다는 것이 좀 아쉬웠지만 이 맛이라면 그 정도는 용서할 수 있어. 최근 쿠팡이츠를 보다가 이 가게가 우리집까지 배달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배달 같은 건 절대 안 할 것 같은 느낌의 가게였는데 말이야.

카페 레종 데트르에서 나온 후 N이 차를 마시고 싶다고 해서 이번엔 옥인다실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웬걸. 옥인다실이라는 곳은 그냥 아무에게나 오픈된 찻집이 아니라 클래스나 프라이빗 차회 등이 열리는 공간이었다. 사전에 예약된 경우가 아니면 오픈조차 되어있지 않은 곳이라... 당황하며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다음엔 또 다른 찻집인 '이이엄'으로 찾아갔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곳도 오늘이 휴무일이라는 것이었다. 아, 오늘 참 되는 일 없네. 나 혼자만이면 속으로 잠시 탄식하고 말았을텐데, 쌀쌀한 날에 N을 서촌 바닥에 이렇게 걷게 만든 것이 면구스러워 민망하기까지 했다.

여차저차 우여곡절 끝에 들어가게 된 헤르만의 정원. 여기도 자리가 없어서 기다릴 뻔 했는데 극적으로 자리가 나서 들어가 앉을 수 있었다. 아녔으면 나 진짜 너무 미안했을 뻔 했지 뭐야. 홍차 선택은 나는 다즐링 TGFOP 아니면 기문(둘 중 하나였을 건 분명한데 둘 중 뭐였는지 기억이 안남), N은 우바. 이 집 차 메뉴 구성이 좀 흔한 스트레이트 티 위주고, 그나마 종류도 너무 적었고, 브랜드명이나 기타 정보도 안 쓰여 있어서 차 고르는 재미는 그닥이었다. 홍차를 메인으로 삼는 카페가 아닌건가....?

N이 서촌에 처음 와 본다고 했었던가? 서촌 통인시장의 명물 기름 떡볶이를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원조집에 들렀다. 간장 1에 고추장 1로 시키려고 했지만 우리가 시장 마감 시간쯤 가서 그런지 고추장 떡볶이밖에 남아있지 않았다는. 오늘 뭔가 계속 삐걱삐걱 잘 안 풀리는 날:( N에게 계속 미안하기만 한 날. 그토록 궁금해하던 기름 떡볶이를 먹어 본 N의 소감은? '생각보다는 별로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N의 반응이 그럴 것이라 어느정도는 짐작했었다. 통인시장 기름 떡볶이를 먹어 본 사람들 반응이 대체로 그렇더라고. 여담이지만 사실 내가 통인시장 기름 떡볶이보다 더 추천하고 싶은 건 석관동 이북식 기름 떡볶이다. 컬리에서도 팔고 비마트에서도 파는 냉동 떡볶이지만 매운 맛과 단 맛의 밸런스가 내 취향이고, 영붐도 만들어주면 가장 좋아한다.

양도 적은 기름 떡볶이로 배를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고 벌써 헤어지기 아쉽기도 해서 종각까지 천천히 걸어 어느 고깃집에 당도했다. 어우. 근데 여기마저 북적이는 인파 + 실내가 너무 추움의 2콤보 타격. 와중에 다행히 고기 맛은 있었다만.(그야 당연히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왔으니까) '안 되는 날은 끝까지 안 되는구나' 하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상냥한 N은 맛있고 좋았다는 평을 남겨주었지만... 미미하나마 가이드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나는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난 네게 이보다 더 좋은 날을 만들어주고 싶었단 말이야:(

이웃이 딱 1200명이 되었던 날. 결혼 포스팅 때문이었던건지 뭔지, 블로그 이웃이 야금야금 늘어 1200명에 도달했다. 이제는 결혼 관련 포스팅은 거의 올리지 않는데도 줄어들기는 커녕, 느린 속도긴 해도 계속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딱 1200명이었을 때 내 눈에 포착되었네. 이 많은 이웃분들은 평소에는 조용하다가(조용한 걸 비난하는 게 절대 아님. 앞으로도 얼마든지 편한 마음으로 눈팅하세요. 파워 내향인인 저는 내향인으로서 좋아요 누르기나 댓글 달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답니다... 이곳은 구독 댓글 좋아요 프리 존) 종종 어디선가 툭툭 튀어나와 장문의 영혼 가득한 댓글을 달며 내게 오랜 독자님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해주신다. 팬을 만들거나 이웃을 늘릴 목적으로 하는 블로그도 아니고, 요즘은 정보성 글도 별로 없이 그냥 조용한 일상생활에 대한 내용만 간간히 올리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랑을 계속 받을 수 있는걸까. 더군다나 요즘은 내가 생각해도 내 글이 비수기에 접어들었다는 생각을 자주 하기 때문에 이웃분들의 존재가 더 많이 감사하다. 언제나 더 좋은 사람이 되기를 포기하지 않으며 지금까지와 같이 살아나갈테야. 최소한 그 누구도 '오 나 그사람 팬인데' 라고 하기 부끄럽지 않도록. 그것이 나의 의무이자 사명.

태현이랑 상학이 만났던 날. 상학이가 종신 서원을 앞두고 쉬는 날을 받아 서울에 왔다. 별은 바빠서 못 나온댔고. 시간 되는 셋이서라도 만나서 놀아야지 뭐. 얘기를 해 보니 다들 강북 중심부가 편하다길래 안국역에서 만나 반타이에서 점심 식사부터 했다. 그리고 나서 이 동네에서 보자고 제안한 나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였던 런던 베이글 뮤지엄에 대기자 등록. 와 근데, 일요일 오후여서 그랬는지, 오후 12시 50분 대기번호 344번, 내 앞 대기킴 86팀. 대기 예상시간 한시간 반. 대기가 있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라서 당황하며 포기하고 다른 곳에 가자고 했는데 동료들이 다른 카페에 잠시 가 있다가 시간 맞춰 돌아오자고 해줬다. 사실 여기 와보고 싶었던 건 어차피 나 혼자 생각이었으니까 다른 곳에 가자고 해도 괜찮았는데 다들 '왜? 그렇게 유명한 곳이라니까 궁금한데? 기다려서라도 한번 가보자!' 하고 말해서 약간 의외이면서도 고마웠다. 알고보면 남자들도 예쁜 공간을 은근 좋아하는 거 같아.

대기시간 동안 오랜만에 커피 브론즈에나 가 있으려고 했는데 문을 닫아서 실패했다. 아니, 최근의 커피 브론즈는 어째 매번 실패의 연속이다. 아예 완전히 닫겨 있기라도 하면 처음부터 깔끔히 포기하련만. 안에서 커피를 볶는다거나 다른 작업을 하고 있는지 갈 때마다 얄궂게도 불은 켜져 있는데 막상 입구까지 발을 들여놓으면 뜨악한 표정의 직원이 '저희 지금 영업 안하는데요.' 라고 말해서 무안한 기분이 들었던 적이 지금까지 벌써 서너번은 된다. 이 정도면 그냥 그 카페가 나를 거부하는 수준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닌 듯한 느낌...ㅎㅎㅎㅎ 그래서 하릴없이 발길을 돌려 최종적으로 간 곳이 안국 153이었다. 1층 전체가 빵집으로 꾸며져 있어서 잘 모르는 분들도 있지만, 이곳도 엄연히 커피와 각종 음료를 파는 카페랍니다. 지나치게 어둑어둑한 이 집 카페 좌석 분위기를 별로 안 좋아해서 빵 말고 커피 마시러는 잘 안 오지만, 막상 이 집 커피 맛이 또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단 말이지. 빵이야 뭐. 말할 것도 없고. 이집 식빵이 참 맛있다고 강조에 강조를 하는 나에게 영업당한 나머지 친구들도 각자의 가족에게 가져다 줄 식빵을 한봉씩 구입했다.

못 와본 동안 여기 새로운 빵 메뉴가 조금 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새 메뉴들 중 우스블랑 개편 이후 갑자기 사라진 두가지 메뉴가 있어 깜짝 놀라버렸다. 감자빵과 올리브빵 둘 다 내가 정말 그리워했던 건데! 이 메뉴가 대체 왜 여기에? 우스블랑과 안국 153 사이에 어떤 관계라도 있는 건가? 하지만 안국 153의 이 빵들은 막상 먹어보니 우스블랑 시절의 이 빵들에 비하면 다소 열화된 버전이었다. 아니, 안국 153 니네 식빵은 기똥차게 잘 만들잖아. 다른 빵도 좀 비슷한 수준으로 끌어올려보자. 응?

안국 153에서 빵과 커피를 마시며 한시간 정도 기다린 끝에 드디어 들어갈 수 있게 된 런던 베이글 뮤지엄. 의외로 마지막 10명 정도는 순식간에 훅 줄어들었기 때문에 만약 대기를 걸어두고 다른 곳에 가 있을 생각이라면 앞에 15명 정도가 남았을 때 서둘러 돌아오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예쁠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정말 잘 꾸몄다는 생각이 들었던 런던 베이글 뮤지엄의 카운터 공간. 동시에, 정말이지 너무너무너무 붐벼서 정신이 없었던 공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카페 전체 전경을 촬영하는 건 꿈도 못 끌 일이었고 카운터 앞에 줄을 선 채 줄이 줄어듦에 따라 오른쪽에서 왼쪽의 풍경을 조금씩 찍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름 잘 찍은 것 같네ㅎ

우리는 이미 안국 153에서 상당량의 빵을 먹은 상태라 많이는 못 시키고, 베이글 두어개와 바질 페스토 크림치즈를 주문해서 나눠먹었다. 아무래도 상학이가 곧 종신서원을 할 예정이다 보니 이날 대화는 가톨릭에 대한 내용이 주를 차지했다. 태현이도 나도 종교 없이 평생 살았던 사람들이라 종교는 흥미로운 미지의 세계 같은 느낌이 있다. 그리고 상학이는 가톨릭에 대해 어떤 것을 물어도 진지하고 깊이가 있으면서 상냥한 대답을 해 주기 때문에 이런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조금도 싫지 않다. 이런 표현이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좋은 신부님이 될 듯한 느낌.

나 삼청동 회사 다닐 때 이 건물이 무슨 스테이크 집이었나 그랬었는데. 그땐 딱 봐도 맛이 없어 보여서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가게 안쪽 창으로 이렇게 예쁜 풍경이 보이는 가게였구나. 어쩜 노오란 잎이 가득 달린 커다란 나무가 가게 뒷 창을 그림처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심심해서 끄적거린 낙서를 그대로 프린팅 한 듯한 컵과 냅킨도 귀여웠다. 그 뿐만 아니라, 베이글 맛도 좋아서 깜짝 놀라버렸잖아. 보통 막 이렇게 힙하고 그러면 음식 맛 같은 건 좀 그냥그냥 적당히 퉁 치고 넘어가는 분위기 아니었나? 이 본격적인 베이글 수준 대체 뭐냐고. 훕훕 베이글, 포비 베이글을 제치고, 마더린러 베이글보다도 경미하게 앞서는데다, 그 옛날 나의 최애였던 고메 베이글도 아쉽지 않은 맛일세. 남편 생각나서 두갠가 세갠가 포장해 간 베이글을 먹어치우는 영붐의 속도와 반응도 다른 베이글 저리가라 수준이었다.

어느 분이 인스타로 DM을 주셨길래 나름대로 정성껏 답을 보내드렸는데 답변만 홀라당 읽으시고 고맙단 말 한 마디 없을 때. 이런 일은 겪을 때마다 사소하게나마 마음의 상처가 된다. 나라고 시간이 남아 돌아서 답변을 드린 게 아닌데. 또 내용을 읽어보니 어머님이신 것 같길래 프로필 사진이며 게시물, 팔로잉 팔로워조차 없는 계정임에도 서둘러 답을 드렸는데. 따뜻한 말 한 마디 정도는 서로 하면서 살 수 있지 않나... 어떤 사람들은 모니터 너머 상대방에게도 마음이나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아.

일 있어서 경진이네 집 근처 역곡에 왔다가 그녀가 추천해 준 맛집에서 저녁식사. 추천을 받았을 땐 그저 그런 동네 맛집이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막상 와보고는 메뉴 구성과 가격과 친절함에 놀라버렸다. '와 나 여기 다시 오고 싶어.' '와 다음에 영붐이랑 다시 오고 싶어.' 라고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말하면서 먹었지 뭐야. 갈매기살과 뽈살, 돼지 부속(막창, 오소리살, 껍데기 등등)을 섞어 원하는 구성으로 한 근에 26000원. (글 쓰면서 다시 찾아보니까 요즘은 29000원으로 오른 듯) 둘이서 실컷 먹고 남겼고, 사실 셋이서 먹어도 충분했을 듯한 양이었는데 거기다 찌개도 기본으로 주고. 특제 파절이도 곁들여진다. 막상 써놓고 보니 이 정도 가격에, 된장이니 계란찜이니 주는 가게- 찾으려면 못 찾을 건 또 아닌가 싶기도 하네. 그러니 따지자면 이 가게를 위해 먼 동네서 일부러 찾아올 정도의 맛집이라고 할 수는 없을지도. 하지만 이 식당이 집 근처에 있었다면 분명히 영붐과 나의 단골가게가 되었을 것이 틀림없다. 사장님이나 직원들도 계속해서 테이블을 들여다보며 직접 고기를 구워주거나 반찬을 리필해주신 덕분에 뭔가 되게 편하게 잘 먹은 것 같은 만족감이 들었단 말이야. 그러니까 여기는 말하자면 '최고로 힙하고 굉장한 미식' 이라기보다는 '고독한 미식가 스타일의 편안한 맛집' 카테고리에 속한 식당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아, 이름은 장군집. 장군집이랑 장군집 주먹고기가 바로 옆 가게로 붙어있는데 둘 중 왼쪽. 장군집 주먹고기 말고 그냥 장군집이다.

팬케이크를 먹으며 경진이랑 한참 수다를 떨다가 강림이 얘기가 나와서, 즉석에서 전화를 걸어 만날 약속도 잡았다. '그래도 해 바뀌기 전에 한번은 보자-' 했더니 순순히 만나준다네? '오 어쩐 일로 오늘은 바쁜척 덜 했어....' 이러면서 경진이랑 둘이 마주보고 웃었다.

마사지를 받으며 괴로워하는 야가미 a.k.a 기무타쿠... 마사지좀 받았다고 HP가 깎여버리다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용과 같이 7 엔딩 보고 한동안 여운에서 못 헤어나오다가 새롭게 시작한 '저지아이즈: 사신의 유언'. 용과 같이 시리즈 제작진이 만들었고, 맵이며 여러가지 요소에서 겹치는 것들이 많고 어쩌고의 이유로 용과 같이 7엔딩 이후 자연스레 넘어왔다. 이 게임은 주인공이 무려 기무타쿠다. 그래. 바로 그 기무타쿠!(물론 게임 상에서는 기무라 타쿠야라고 나오는 게 아니라 '야가미 타카유키'라는 캐릭터로 등장함) 내 기무타쿠 잘 생긴 건 알았지만 목소리가 이렇게 스윗한 건 또 처음 알았네. 게다가 주인공 캐릭터가 하필 그 얼굴에 그 목소리로 싸움이면 싸움, 연애면 연애, 못하는 게 없는 캐릭터라 더더욱.... 잘하는 것을 넘어서서 무려 네 명의 여성과 동시에 연애하지 용과 같이 시리즈와는 달리 수사/추리 장르인 점도 내게는 플러스 요소였다. 서브 무안흥신소 탐정이 할 법한 조사 같은 것들로 구성되어 있고, 미행이나 자물쇠 따기 같은 요소들도 매력적이었던 듯. 미행에 대해 혹평이 많던데 사실 난 미행도 즐거웠다.

배틀 스타일이 용과 같이 7과는 달리 턴제가 아니어서 마지막 아몬신 잡을 때는 꽤나 고전했다. 난 몇 번 하다가 도저히 안 되어서 답답한 나머지 영붐에게 미뤄버렸는데, 영붐이 이를 악물고 수십 차례 도전한 끝에 해치워줬다. 내가 해준 건 구글링으로 공략법 찾아다가 끊임없이 알려준 것 뿐ㅎㅎㅎㅎ 말 나온 게 하필 게임이라서 그렇긴 하지만, 게임이 아니더라도 영붐의 끈기는 정말 대단한 수준이다. 난 두 세번 시도해서 잘 안되면 흥미를 잃어버리고 그만두는 편인데 영붐은 흥미를 잃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판단이 서면 계속 시도해 본다. 그게 게임이든, 일이든, 삶이든. 그런 그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와... 이래서 이 나이에 그런 성취들을 이뤄낸거구나' 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든다. 나였다면 저렇게는 못 했을텐데.

경주 도미 다녀온 뒤로 영붐에게 자주 해줬던 샥슈카. 만들기도 간단한데 영붐이 너무 좋아해주고 야채 먹이기에도 용이해서(...) 내겐 여러모로 고마운 음식이다. 주말 점심에 이거 만들어서 빵이랑 같이 내어주면 진심으로 기뻐하는 영붐을 볼 수 있음:)

11월의 마지막 날. 우리에겐 아무 날도 아닌데 퇴근하는 영붐의 손에 오렌지 쥬스와 함께 작은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어? 이건 뭐야? 나 주려고 사 온거야? 왜왜? 갑자기 왜 사왔어? 하면서 싱글벙글하는 내 볼을 가볍게 꼬집으며 영붐이 하는 말. "이런 표정 보려고 사 왔지." 아니 정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갈등없는 결혼생활의 공로 중 4할이 영붐의 아름다운 말투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4할은 영붐의 가치관과 행동, 나머지 2할은 귀엽고 사랑스럽고 애교뿜뿜한 내 덕(?)) 영붐이 해주는 것들을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사실 이런 것들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은 아니잖아. 하지만 이 별 것 아닌 것들이 내게 행복감을 가져다 주고, 사랑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힘이 되어 준다. 그러니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해도 굳이 기록으로 남겨 열심히 기억해야만 해. 할머니가 되어서도 이 글들을 읽으며 영붐이 이렇게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아는 다정한 남편이었음을 떠올릴거야. 참고로 돈 오렌지 쥬스는 bits 좋아하는 나를 위해 'with bits'쓰여진 걸로 일부러 골라서 사온 것이라는데 아쉽게도 생각했던 맛이 아니었다. 신 것을 싫어하는 내 입에는 역시 팁코 쇼군오렌지 주스가 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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