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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설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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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7회 작성일 26-08-15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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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에게는 중요한 사건이라 당장 체계적이고 면밀한 조사를 했으면 하는데 정작 수사기관에서 미적대거나 심드렁할 때 혹은 다른 긴급하고 심각한 사고들에 치여 후순위로 밀려 당장 제대로 된 수사가 힘들다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세 가지다. 기다리거나, 포기하거나 아니면 나를 고용하거나. 나는 탐정이다. 탐정이라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국가 공무원인 형사로 착각하거나 영화에서 본 조폭 이미지를 떠올린다. 사설탐정 직원쯤으로 생각하고 비상식적인 일이나 불법이 이용 가능한지 묻기도 한다. 일일이 대응하려면 피곤하니 그러거나 말거나 해야 한다. 매일같이 새로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는 어디에나 있지만 경찰과 형사는 경찰서에만 있기 때문에 우리 같은 사설탐정이 그 수요를 감당해 줘야 한다. 정부도 우리가 하는 일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음지에만 머무르게 했다. 하지만 우리가 필요한 사건, 사고는 계속해서 생겼다. 팔 년 전 인구 십오만 명이 겨우 넘는 이 작은 도시에 사무실을 차렸을 때만 해도 간판과 명함에 탐정이라는 단어를 넣는 게 허락되지 않았다. 못하게 한다고 안 할 수는 없으니 그냥 '탐장사무소' 소장이라고 하거나, 탐장을 대충 뭉개어 발음하다가 2020년 8월, '탐정 유사 명칭의 사용 금지' 조항이 삭제되고서야 비로소 떳떳하게 탐정이 될 수 있었다. 이름이 나왔으니 말인데 '탐장사무소'는 탐정보다는 쌈장사무소가 더 잘 어울렸다. 된장도 아니고 고추장도 아닌 쌈장.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사건 같지 않은 사건들만 맡으며 도시의 그늘 속 심부름꾼으로 산 지 삼 년이 되던 해, 아줌마를 만났다. 비싼 옷을 걸쳤지만 입은 옷이 자신의 것이 아닌 양 모든 행동이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아줌마였다. 직접적으로 아줌마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사모님보다 아줌마 단어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아줌마는 여러 소리와 함께 왔다. 번듯한 간판 없이 허름한 상가 2층에 자리한 사무실까지 올라오면서 아줌마는 다그다그 거렸다. 다그다그 발소리가 특이해 여러 번 지켜보고서야 소리의 원인을 특정할 수 있었다. 아줌마의 구두.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른 신을 신고 온 날에도 기어이 다그다그 거렸다. 다그다그 소리 말고도 끄윽 덜크덩 이 있다. 아줌마는 사무실 문을 당겨서 여는지, 밀어서 여는지 관심이 없었다. '당기세요' 글씨는 진화를 거듭해 점점 커졌지만 아줌마는 한결같았다. 힘으로 밀어붙여서 끄윽 덜크덩 소리를 낸 후 다시 열었다. 처음 한동안은 다그다그 소리에 일어나버려서 엉거주춤 서 있는 상태로 아줌마가 문을 제대로 열기를 기다려야 했지만, 어느샌가부터는 다그다그 끄윽 덜크덩 까지 듣고 나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한 달에 한 번 사무실에 들러 사례비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사건에 대해 무표정으로 보고를 받았다. 아줌마가 요구한 사항은 자신의 딸을 미행해 달라는 것이었다. 외도가 뭔가 이상한 배우자도 아니고 돈 떼먹고 도망간 지인도 아니다. 같은 집에 사는 딸을 미행해 달라니, 무슨 뚱딴지같은 일인가 싶어 거절했지만 의뢰자는 끈질겼다. 입양한 딸이라며 집 밖에서의 행적을 모두 알고 싶다고 했다. 처음 의뢰를 받았을 때만 해도 딸은 19살의 미성년자였지만 이내 성년이 되었다. 아줌마와는 다르게 모든 점에서 자연스럽고 나아가 사랑스러운 사람이었다. 외모는 물론이거니와 성격마저도. 학생의 일상에 특별할 것이 있을 리 만무했지만 아줌마는 딸이 집 밖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어 했다. 사례비가 넉넉한 만큼 열심히 했다. 탐정까지 고용해 미행하는 데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며 시시콜콜한 행적들까지 분석해서 보고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록 자신이 원하는 답을 못 들었는지 아줌마는 다르게 질문하기 시작했다. "딸이 바깥양반을 집 밖에서 만난 적이 있나요?" "없습니다." "만나는 사람은요?" "없습니다." 모든 것이 아줌마 덕분이다. 오 년 동안 다른 사건은 일체 받지 않고 딸을 미행하는 일 하나만 매달릴 수 있었고 이제는 몰래 미행하지 않아도 보고할 내용을 브리핑해 주는 사람이 생겼다. 사랑하는 사람이다. 다그다그 소리가 들린다. "오신다. 잠깐 캐비닛에 들어가서 기다려줘. 자기야. 이따가 소고기 사 먹으러 가자." 끄윽 덜크덩 .

당신은 한 어머니에게 딸을 미행해달라고 의뢰를 받은 사립탐정이다. 그녀에게 보고하지 않기로 한 것은 무엇인가?

이번 글의 주제는 아래 책에서 골랐다.

대표번호1899-2584